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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여행, 산책
“MOST IMPORTANT PERSON IN THIS SHOW” 본문
“MOST IMPORTANT PERSON IN THIS SHOW”
다시 새벽부터 깨어 이곳 뒤셀도르프에서 보고픈 공간과 전시, 그리고 그 주변으로 움직이며 보고 싶은 공간들을 두고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독일어 단어를 찾아가며 기차표를 예약하려 할 땐 그보다 큰 곤욕이 없다.
새벽시간을 이렇게 다 허비할 순 없기에 오늘의 일정에 다시 집중해 본다. 아마 길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가게들도 거의 닫았겠지. 몇일 전부터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가게들에는 크리스마스이브와 당일 영업시간에 대한 안내가 붙어 있었다. 이브에는 오후 2시면 문을 거의 닫을 거라고 붙어 있고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열지 않을 것이다. 숙소를 나서니 역시나 눈앞에 사람은 대여섯… 혹시나 하고 괴테박물관 앞을 지나간다. 역시나 닫았다.
길을 건너 공원으로 접어들면서 오늘은 그 공원에 대해 궁금해졌다. 앞에 세워진 안내판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여러가지 안내사항과 그림을 곁들여 설명을 해 두었다. 그 공원은 최초로 만들어진 공립공원으로 170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것이다. 며칠간 돌아다니며 본 그곳은 이 공원의 아주 일부에 불과했다. 그 면적이 엄청났고 그중에 3분의 1은 녹지로 만들어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공원의 이름은 HofGarten. 공원의 내력을 읽으니 조금 더 친숙해진 느낌이다. 이리저리 나 있는 길들을 걸으며 중앙에 있는 길을 지날 때 기다란 벤치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하였다. 지름이 대략 8cm 정도 되어 보이는 투명재질의 봉 가운데 형광등이 들어 있었다. 바닥 부분과 등받이 부분 모두에 걸쳐서. 아마도 밤이 되면 불이 켜지는 벤치인가 보다. 나중에 숙소에 돌아갈 즈음에 한번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어떤 나라들은 노숙자들이 벤치에 눕지 못하도록 중간중간 분리대를 만들기도 하고 어떤 곳은 울퉁불퉁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 독일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전체가 길게 만들어진 벤치도 있고 두 사람, 한 사람 이렇게 앉을 수 있도록 나누어진 것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같이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오늘의 목적지가 따로 있었지만 공원을 지나는 그 시간만큼은 공원이 주인공이었다. 이제껏 다니던 곳을 벗어나 새로이 만나는 공원의 모습은 또 다른 종류의 나무들과 산책로로 나를 안내했다. 나즈막한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굽은 길은 아름다웠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로 웃으며 장난치며 걸어가고 운동을 하는 사람, 두 마리의 커다란 개랑 산책을 하는 사람, 모두모두 그 순간을 채우는 아름다운 요소들이었다.
대략 40분이 걸려 NRW FORUM에 도착했다. 전시장에 들어서기전 외부건물을 보았지만 금방 잊었나 보다. 그 이전에 보았던 K20이나 kunstsamlung과 비교하기엔 부족하지만 오늘의 공간도 시작점만 보고 가볍게 보았던 나의 판단착오였다. 공간은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었고 각각의 공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연출되어 있었다. 또한 전시관람의 방식이 거의 모든 글씨를 읽어야 하는 전시여서 아주 느릿느릿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BIEKE DEPOORTER의 전시는 이집트의 일상 깊은 곳을 촬영한 사진전시였는데 특이한 점은 프린트한 사진이 그대로 전시된 것이 아니라 프린트한 사진 그 위에 이집트 사람들이 그 사진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 감상들을 적은 것을 전시했다는 것이다. 누군가 하나 그 사진에 대한 의견을 적으면 그에 대해 또 다른 사람이 의견을 더하고 그렇게 해서 하나의 사진과 그 사진에 대한 반응과 의견들이 합쳐져 다시 하나의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이는 작가의 의도에 대한다양하고 직접적인 해석과 감상의 과정이 일부 담겨 있고 그것을 보는 나 또한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보게 되는 효과가 있는 듯했다. 물론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작품을 감상할 경우에 가질 수 있는 더 많은 가능성을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이 또한 작가의 의도 혹은 작품감상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에 적힌 많은 이야기들을 읽으며 이집트의 문화적, 종교적, 정치적 상황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관점을 볼 수 있었다. 일례로 이집트인 여성들은 집안에서의 개인적인 활동을 공개하거나 노출하는 것이 금지되거나 꺼려하는데 이에 대한 남성과 여성, 젊은이와 나이 든 사람들의 생각이 혼재되어 표현되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표현할 권리가 있다’,
‘잘 표현된 사진이다’,
‘이 사진은 너무 어둡다’,
‘이 사진은 찍어서는 안되었다’,
‘저 소녀는 지금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지은 죄가 있어서 숨어 있는 것이다’,
‘이집트는 언제나 밝은 빛 아래 있었다’,
‘저 여인이야말로 이집트 여성의 모범이다’ 등등
그 사진의 구성과 현장에 있는 사물, 사람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과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물론 그들의 현실과 일상을 사진으로 지켜보는 것은 마음이 아프거나 힘든 부분도 있었다.
한참을 시간을 들여 작업을 읽고 보고 다음 공간으로 이동했다. 작가의 프랑스 작은 마을에서 진행한 레지던시 결과물을 3개의 영상으로 만든 것이 있었다. 아닌가… 너무 많은 이미지들을 봐서 혼란스럽다. 여하튼 작가의 작업은 이후 대략 6-7개의 공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주제로 진행되었다. 마지막 전시장에는 하나의 작업의 계기가 된 추적의 과정이 엄청난 자료와 함께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마치 범죄사건을 추적하는 탐정처럼 연결고리와 단서 그리고 중간중간의 결과물과 이후 계획에 이르는 것들이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맞은 편의 새로운 전시공간으로 들어간다. 앞부분의 전시는 거의 건너뛰듯 지나쳤다. 마지막 깊은 공간에 들어섰을 때 뭔가 새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카이브 전시였는데 벽에는 작은 엽서 사이즈의 종이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각각의 종이에는 작가의 이름과 작은 이미지들이 있었고 연도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하나의 바코드들이 인쇄되어 있었다. 전시장 중앙에는 소파와 그 앞에 모니터가 놓여있었고 모니터에는 지시사항이 있었다. 하나의 종이를 선택해서 바코드를 읽히면 자료를 볼 수 있다.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몇몇 종이를 골라 시도해 본다. 모니터 중앙 상단에 작은 카메라가 있어 앞을 스치니 화면이 보인다. 카메라 앞에 거리를 조정하여 바코드를 읽히니 마침내 내가 선택한 작가에 대한 영상이 나온다. 아주 효율적이고 좋은 방식의 아카이브 전시라 생각했다.
전시장을 벗어났을 때 시간이 대략 4시 반. 바로 옆에 kunst palast가 있었지만 오늘은 무리였다. 잠시 입구만 확인을 하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눈이 침침해지는 시간이 다가온다.
발걸음이 급해진다. 그렇지만 아침에 나설 때 궁금해했던 공원의 벤치를 확인하고픈 마음에 숙소로 돌아오는 길을 빙빙 돌아 다시 공원으로 간다. 도착한 즈음엔 아직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은 힘든 날이다. 숙소로 돌아가 할 일도 많을 것이다. 이동계획도 짜야하고 또 다른 숙소를 어떻게 할지도 결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뒤셀도르프를 베이스캠프로 한 건 잘한 일이다. 주변으로 움직이기에 참 좋다.
첫 줄에 적힌 글은 전시장 입장권을 끊었을 때 내 손목에 채워준 띠에 적혀 있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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