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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ter 이동
당분간 독일에서의 마지막 여행지로 숙소를 이동했다. 네덜란드로 가야 하는 일정이랑 연말이랑 겹치고 또한 그저 네덜란드로 먼저 가기엔 다음 일정이랑 너무 멀고, 뮌스터를 건너뛰자니 언제 다시 이 근처까지 올 수 있을까 싶어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결국 그나마 가까이 왔을 때 가는 게 좋겠다는 결론.
기차표를 알아보고 숙소도 알아보고 모두 결정.
이제 새벽에 일어나 짐을 꾸리고 아침에 길을 나서기만 하면 기차가 나를 새로운 곳에 데려다 줄 것이다. 뒤셀도르프는 큰 도시여서 외곽의 낮고 작은 집들이 있는 곳을 보려면 조금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앞에 들렀던 Neuss나 Essen 같은 경우는 조금만 이동하면 바로 낮고 띄엄띄엄 있는 건물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도심에 있는 큰 건물과는 대조적으로 변두리에 있는 건물들을 거의 뾰족 지붕에 단층 건물로 하나씩 떨어져 있었다. 넓은 농지 가운데 하나 있는 집도 있고 들어가는 길에 서 있는 가로수처럼 줄지어 있기도 하다. 그런데 하나같이 색상은 갈색 혹은 적갈색의 지붕이다. 그리고 벽체는 옅은 황토색이나 조금 탁한 아이보리에 가깝다.
뮌스터에 도착하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차를 타고 대략 한 시간 이십 분. 대여섯 개의 역을 지나서 뮌스터중앙역에 도착했다. 망설일 것도 없이 빛이 보이는 출구로 향했다. 어차피 그 출구가 아니면 돌아 나서면 될 것이다. 날씨가 너무 좋아 도시가 산뜻하게 다가온다. 사람들도 뒤셀도르프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뭔가 조금 더 온화하고 안정된 느낌이다. 단순히 날씨 때문이라 하기엔 부족하다. 뭔가 미묘하다.
물론 새로운 곳에 왔으니 지나는 길에 있는 가게들을 스캔하고 조금 헤매다 도착했다. 숙소도 도미토리지만 깔끔하고 크다. 시스템도 호텔처럼 24시간 리셉션을 운영한다. 이전 도미토리에서는 그냥 열쇠만 주고 호스트들은 처음 들어갈 때 이후에는 잘 보지 못했다. 친절하게 안내를 받고 궁금한 사항도 물어본다. 얼른 짐을 풀고 도시를 돌아보고 싶어 마음이 급하다. 옷을 갈아 입고 가방을 챙겨 나선다.
나서기 전 다시 물어본다. 찾는 음식점 종류와 사진을 찍기에 좋은 곳, 그리고 뮌스터는 저녁 늦게까지 밖에 다니는 게 어떤지 등등. 두 세 군데 음식점을 소개해 주었고 일몰이 좋은 곳과 인공 운하가 있는 곳을 안내해 주었다. 도시는 새벽까지 다녀도 괜찮을 만큼 안전하다고 알려주었다. 어차피 나는 낮에 온 사방을 돌아다니느라 피곤하기도 하고 밤문화에는 크게 관심이 없으니 나갈 일이 거의 없겠지만 그래도 정보차원에서 확인하였다.
도시라고 해도 조금씩 조금씩 걸어서 하나의 포스트에 닿으면 그 다음 포스트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뒤셀도르프도 거의 그랬다. 여기는 더 작은 곳이라 금세 운하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이쁘장한 캠핑카로 만들어진 카페에서 커피를 하나 사서 운하를 따라 걸으며 사진도 찍고 구경을 한다. 도시는 한산하다. 월요일이라 문을 닫은 곳도 꽤 있다. 아니면 연말연시라 휴가를 간 것인지도 모른다. 거의 마지막에 다다르니 Kunsthalle Munster가 있다. 물론 휴무. 여기 머무는 동안 오픈하는 날이 있다면 들러볼 것이다. 운하로 향하기 전에 중간에 추천해 준 식당을 다녀왔는데 국적을 특정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운영하는 한식당 비슷한 곳이었다. 오래간만에 소고기 비빔밥 비슷한 메뉴를 주문했는데 고추장과 밥을 보니 반가웠다. 매콤하고 땅콩이 들어 있어 달콤한 비빔밥이 좋았다.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걷다 보니 얼른 도착했던 것이다.
중간중간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도시의 색감은 빨강과 노랑이다. 카키에 가까운 녹색도 있었다. 이전에 대만에 갔을 때도 도시의 색감을 담으러 다녔었는데 그때도 도시들이 색상을 사용하는 방식을 깊이 감상한 적이 있었다. 원색임에도 아름답게 실용적인 방법으로 사용하는 법. 도시의 아이덴티티를 살리면서 공공디자인 상업디자인에 사용하는 법 등에 대한 공부가 되었다. 이번의 느낌은 그때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접근을 하게 되었지만, 조금 더 개인적인 선호도라든가 끌림에 조금 더 치중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나의 감정상태와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빨강은 언제나 강렬하기에 다른 말을 더할 필요가 없다. 노란색 계열은 색이 칠해진 것도 있지만 태양이 비춰질 때 분할이 되어 나타나는 구성이 좋아 끌리게 되는 것 같다.
두 시간여 다니며 도시의 일부를 스캔하고 숙소로 잠시 들어왔다. 목적은 장 본 물건들을 내려두고 해진 청바지를 수선하러 가기 위해서다. 오기 전에 뮌스터의 수선집을 찾아봤는데 근처에 한 군데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그러한 곳이 맞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략 10분가량 죽 늘어선 쇼핑가를 지나니 내가 찾는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알려준다. 하지만 백화점 같은 건물의 앞이다. 간판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 1층이 아니라 2층이나 내부에 있을 거라 생각하고 다시 한번 건물의 출입구들을 차근차근 돌아본다. 갔던 길을 돌아 다시 건물을 돌아보다가 2층으로 올라가는 출입문에 안쪽벽 하단에 쓰인 간판을 찾았다.
반갑게 뛰어 올랐다. 출입문에 영업시간이 7시까지라고 적혀 있었다. 들어가서 바지를 보여주고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다. 세 사람이 일하고 있었다. 그중에 두 사람은 영어로 소통이 되었다. 대략 한 시간 정도면 된다고 하기에 그러면 구경을 하러 다니다 찾으러 오겠다고 하며 나섰다. 여기까지 와서 옷 수선이라니… 독일로 출발하기 전에 일부 수선을 했지만 그 주변이 이렇게 빨리 해질 줄은 몰랐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결과물로 수선을 할 수 있어 만족이다.
기다리는 동안 길을 잃는 듯이 일렁이며 돌아다니다 드는 생각은 나는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탐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로 모르는 곳에 가면 당연히 두려움과 불안이 있다. 하지만 나는 하나의 근거지(대부분 숙소)가 정해지면 그렇게 두렵지 않다. 하나의 출발점이 나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은 그 강한 끈으로 내가 어디에 있든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안전하다는 느낌을 준다. 어제의 나는 정처 없이 다니는 하나의 영혼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안의 감정은 차분했으며, 물론 좋은 방향의 감정으로 크게 요동치고 있었지만, 불안은 전혀 없었다. 나는 길을 다니며 늘 포스트를 기억해 두려 하고 그렇게 이동을 하기 때문이다.
때로 비슷하고 복잡해서 다시 오리엔테이션을 잡기가 어려울 때도 있지만 대부분 금방 방향을 잡는다. 우리의 인생도 모두 그러한 기준점, 근거지가 필요하기에 사람들은 집을 사고, 결혼을 하고, 직장을 구하고, 연인을 만들고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불안을 줄여주고 나를 안정시켜주는 그 상태를 위해서.
그중에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나도 내 소유는 아니지만 나의 근거지가 있고, 좋은 관계로 서로를 위하며 안정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 인간관계는 충돌이 있기도 하지만 큰 범위에서는 그러한 충돌조차도 연결의 또 다른 측면이기에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연결이 끊어진다면 그러한 충돌조차도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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