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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Days in Europe

처음 가진 휴식일

smartjoe 2024. 11. 14. 13:18

여행을 떠나 온 지 3주 차에 접어들어서야 첫 휴식을 가졌다.

 

이전 같았으면 거의 1년에 한두 번 여행을 위해 짐을 싸고 계획을 세우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들을 거의 며칠마다 하면서 다녔으니 무언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번 여행의 시작점은 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도착하니 나를 끌어 자꾸 다른 이들을 보러 가도록 만들고 있다.

 

끝도 없는 다른 이들과의 만남이다.

 

이것 또한 다른 이를 통해 나를 보게 하는 것인가 싶다가도 때론 좀 과한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뭘 챙겨 먹고 길을 나서면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는 이른 저녁이 되어야 숙소에 들어온다. 그 중간엔 어딘가에서 느긋하게 앉아 쉬거나 때로 눕거나 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 그야말로 강행군이다. 실내에서 전시를 보거나 아니면 외부를 다니며 산책을 하더라도 늘 움직여야만 했다. 물론 한국에 있을 때 신경을 써야 했던 많은 관계와 일들에서 벗어난 것은 맞지만 여기에선 또 다른 것들을 많이 챙기고 신경을 써야만 했다. 내일의 일정, 이동계획에 따른 기차표 예매, 다음 여행지 숙소, 짐 챙기기, 매일의 기록 등등.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어 있는가.

 

 

 

계속 이렇게 가서는 안될 것 같은 생각에 하루를 그냥 마냥 쉬었다.

 

거의 새벽마다 일어나 글을 쓰거나 다른 정리를 하거나 계획을 세우며 보냈는데 계속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거나 쉬었다. 그렇게 몇 주를 지내며 아침부터 일정을 진행하고 나니 너무 피곤했다. 시차적응이 되지 않은 나의 몸을 너무 괴롭혀 왔던 것 같다. 아직도 새벽에 눈을 뜨지만 이제 서서히 눈뜨는 시간이 늦춰지는 걸 보면 내 몸이 조금씩 이곳의 시간에 적응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고맙다. 아직 이동할 계획이 많긴 하지만 거의 시차가 비슷한 곳들이라 조금은 덜 피곤할 것 같다.

 

그렇게 간만에 느긋한 아침을 보내고 책상에 앉아 자료도 찾아보고 다음 주에 있을 발표자료도 좀 고민하고 일을 하다가 다시 피곤하여 침대에 들었다. 어차피 오늘은 쉬기로 했으니 .. 숙소 방문에도 걸어두었다. 점심까지 잠들어 있다가 어제 장을 봐온 것들을 꺼내 점심을 챙겼다. 계속 빵이랑 햄, 살라미 등이다. 이곳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먹고 사는가 싶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 사람들의 일상을 다 보진 못했지만 보통의 사람들, 잘 사는 사람들,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다 있다. 길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많고 구걸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네덜란드 보다 독일에서 더 많이 보았다. 그들을 생각하면 나는 어쨌든 실내에서 밤을 보내니 이러한 불평은 사치라고 하겠다.

 

속을 조금 채우고 설렁설렁 챙겨 입고 숙소 앞에 있는 깊은 숲을 잠시 걸었다. 이 방향으로 조금 걷다가 다시 다른 방향으로 걸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여기 주변의 숲은 네덜란드에서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었다. Wolfheze 라고. 사람들은 트래킹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운동을 한다. 곳곳에 부러진 나무들이 있고 진초록의 이끼가 가득하고 버섯들도 함께 자란다. 간혹 아주 큰 나무가 쓰러진 곳은 그 주변에 키 작은 울타리처럼 만들어서 죽은 이후에도 보호를 하는 것 같다.

 

숲에 들어서 1분만 걸어도 깊은 숲에 든 것처럼 사방이 키 큰 나무와 풀들이다. 또한 네덜란드는 산이 없고 거의 평지여서 처음 들어서는 사람이라면 기억을 할만한 지형지물이 잘 구별되지 않는다. 더 깊이 들어가고 싶지만 중간중간 갈림길이 있고 깊어지는 숲에 빠질까 두려워 금방 돌아서고 말았다.

 

참고로 이곳은 네덜란드 아른햄이다.

정말 작정하고 쉬었는지 이날은 찍은 사진도 다 해서 열 장이 안되네... ㅎㅎ